[02.06.11] 악취풍긴 천변이 시민 쉼터로(2002.6.11)

관리자
발행일 2003-11-27 조회수 114

“엄마, 미꾸라지에요. 진짜 미꾸라지.”
얼마전 한 방송에서 개그맨 이경규씨가 밤을 새워가며 도심에서 너구리를 기다리던 곳, 바로 그곳이 되살아난 서울 양재천이다.
양재천은 시멘트로 뚜껑을 만들어 덮어 길을 내지는 않았지만, 몇해 전까지만 해도 썩은 물이 흐르는 버려진 도심 하천이었다. 강남구가 양재천에 물이 흐르던 곳과 양쪽 둑에 덮혀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자연하천으로 복원에 나선 것은 1995년 7월이었다. 영동2교~탄천 합류부까지 길이 3.5㎞에 137억원을 들여 2000년 말까지 자전거길을 내고, 갈대와 갯버들, 노란 붓꽃과 망초를 심어 가꿨다. 악취나는 하수도였던 양재천의 물은 자갈과 물풀을 이용한 수질정화시설로 하루 3만2천여t을 걸러 5급수에서 2급수로 좋아졌고, 메기, 모래무지, 피라미 등 물고기는 18가지로 늘어났다. 이제 양재천은 하루 1만명 이상이 찾아 산책과 운동을 즐기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되살아난 양재천’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양재천 복원작업을 맡았던 강남구 이광세 토목과장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꿈같은 소리 하지마라’, `돈 많아서 그따위 생각을 한다’는 비난도 많았을 정도로 복원은 모험으로 여겨졌다”고 회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토목과장이 복원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물을 깨끗하
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양재천 복원 성공 이후 그곳이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물을 맑게 하고 접근성만 높여주면, 중랑천이나 청계천 등 도심하천도 공원이나 녹지가 모자라는 도시사람들의 휴식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악취에 구역질이 나던 수원천은 복개공사가 시민들의 요구로 중단되고, 자연형 하천으로 되살아난 경우다. 길이 15.7㎞의 수원천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웃통을 벗고 헤엄을 치던 곳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에 따라 오염이 악화되자, 94년 수원시가 도로를 만들어 교통난을 덜기 위
해 복개 계획을 발표하고 790m를 실제로 덮었다가 96년 5월 복개공사가 중단됐다.
대신 수원천은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상류를 중심으로 약 6㎞가 자연형 하천으로 바뀌었고, 이제 양재천 못잖은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잡았다. 하류쪽은 아직 인공적인 냄새가 나지만, 시는 2006년까지 자연형 하천 복원을 끝낼 계획이다.
양재천과 수원천은 애초 복개가 되지 않았지만, 제주도 산지천은 콘크리트를 씌웠던 474m의 복개 구간 위에 있던 낡은 주상복합건물과 구조물을 뜯어냈다. 건물 보상 과정에서 주민들이 시청을 점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96년에 시작된 복원작업의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다. 전주의 전주천도 1급수에 사는 쉬리와 다슬기가 찾아온 자연형 하천으로 돌아왔다.
냇물을 덮었던 콘크리트 철거가 한창인 곳도 있다. 서울 성북천은 69년 복개된 콘크리트를 헐고 자연하천으로 되살리는 공사를 이제 막 벌이고 있다. 구는 지난해 7월부터 복개구조물 위에 있던 상가아파트 1개동과 복개구조물 110m를 걷어냈고, 나머지 6개동도 보상 협상이 끝나는대로 뜯어내는 등 장기적으로 길이 2350m를 자연형 하천으로 가꿀 계획이다.
이밖에도 안양천, 안성천, 서울의 도림천, 경기도 부천의 굴포천, 충북 청주의 무심천, 경남 거제의 산양천 등도 되살리기 모임이 만들어지는 등 복원 논의가 뜨겁다. 독일 등 선진국이 60∼70년대부터 벌여온 자연형 하천 되살리기와 그 요구가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양재천 되살리기 설계 등에 참여했던 경원대 조경학과 최정곤 교수는 “양재천은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없애고 자연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미국의 보스턴이 고가도로를 없애고 지하에 도로를 내고 녹지와 보행자 도로를 만들었듯 청계천 복원도 장기적으로 옛 도심을 재개발
하고 사람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해준다는 측면을 고려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 잿빛 서울의 '오아시스' 양재천 -

“물이 깨끗하고 맑으니까 좋아요.”
웃통을 벗고 양재천 물놀이 공원에서 친구들과 물장난을 치던 김승규(10·서울 강남구 대치동)군은 속옷과 머리가 흠뻑 젖었다. 팬티만 달랑 걸친 여자 아이들도 친구들에게 물을 끼얹고 물장구를 치면서 깔깔댔다. 아이들 머리 위로는 왜가리가 날았다.
승규는 “옛날에는 친구들이랑 왔다가 물이 썩고 냄새가 나서 그냥 갔는데, 물이 깨끗해지니까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했다.
한 꼬마는 아빠 손을 잡고 양재천에 놓인 돌다리를 건넜다. 장현준(38·서울 강동구 천호동)씨는 “양재천은 냇가 양쪽에 콘크리트가 없고 인공적인 느낌이 적어 좋다"며 “주말마다 사람들은 고생하며 춘천 등으로 가지만 양재천에 오면 서울에서도 자연을 맛볼 수 있다”고 전했다.
양재천 한편에서는 떼거리져 핀 밤꽃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고, 한 여성이 주위의 시선을 잊은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양재천 한쪽 그늘에서는 가족들이 한데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 풀냄새도 나는 게 너무 좋아서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는 강흥순(서울 동작구 노량
진2동)씨는 “큰애가 조금 비만인데 달리기 하기도 좋아 올 여름에는 해수욕장 안가고 양재천에 계속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근처에서 전세를 산다는 강흥자(41·강남구 역삼동)씨는 “양재천에 나오면 발을 담그고 싶다”며 “삭막한 곳에서 사는 것보다 정서생활을 할 수 있어 근처에 집을 사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4살난 늦둥이와 나들이를 나온 송재일(45·강남구 개포동)씨는 “아이들이 한번 나오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며 “저녁 7~10시가 되면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하천변에 빼곡하다”고 말했다.
이름 모를 들꽃 위에는 하얀 나비가 쉴새없이 옮겨다녔고, 저멀리 60여층 고층 빌딩 뒤로 태양이 숨을 때까지 사람들은 양재천을 떠날 줄 몰랐다.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자, 이번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키를 훌쩍 넘는 갈대숲 사이 길로 나
타났다.
2일 오후에 찾은 서울 강남 양재천은 숨막히는 빛 서울에 숨통을 틔워주는 조그만 오아시스였다.
김순배 기자marcos@hani.co.kr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