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5.29] 뜨는 동네를 찾아서 - 광주 푸른길#

관리자
발행일 2004-02-02 조회수 170

폐선부지에 관해서 김진애(건축가, (주) 서울포럼 대표)씨
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읽어보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5만 평의 빈 땅이 갑자기 생긴다면? 게다가 도시를 하나로 엮어내는 땅이라면?
그 도시는 얼마나 좋을까. 도시를 새로 만들, 시민들이 하나 될, 절호의 기회다. 그 행운의 도시는 ‘빛고을’ 광주이고, 이 도시 한복판 남광주역 터 부근의 경전선 철도가 없어진 10.8 km의 폐선( 線) 부지가 도시의 새로운 공간이다.

●광주 시민의 아픔과 승리
이 공간의 사연이 그리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경전선이 생겼고 도청 뒤편 남광주역이 중심역이었다가 호남선과 광주역이 생긴 후에는 순천 방면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 철도가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소음 문제는 물론이고 건널목이 28개나 되어서 교통 인명사고가 그치지 않았다. 평균 한달에 한명 꼴로 희생을 냈다.
30여년 동안의 숙원 끝에 20세기 말 드디어 경전선이 폐선되었고 광주는 이 폐선 공간을 ‘푸른 길’로 만든다는 근사한 결정으로 21세기를 시작했다. “경전철을 놓자, 도로를 넓히자, 주차장으로 쓰자”는 이른바 ‘실용파’들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푸른길‘로 만들기로 한 데는 ’시민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철도 옆 주민들, 광주의 환경을 걱정하는 시민들, 환경단체, 시민단체들이 열심히 광주시와 머리를 맞댄 결과 2000년에 지혜로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사진설명 : 폐선부지 옛 철로변에 주민들이 가꾸는 텃밭.생활속의 생태 정원이 될수 있다.

●10.8Km 폐선부지의 신선한 느낌
이 부지의 폭은 좁은 곳 8m, 넓은 곳 15m.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광주천이 직선인 것과 대조적으로, 광주 도심을 둘러싸는 동그라미 모양이다. 광주의 정신적 지주인 무등산을 향해 달려가는 듯 싶으면, 방향을 바꾸어 무등산과 같이 달리다가, 다시 도심을 향해 달려간다.
신선한 느낌이다. 언덕 아래 이런 공간이 있으리라 예상치 않다가 갑자기 시원하게 나타난다. 광주 특유의 화려한 지붕선을 자랑하는 한옥들의 담장이 면하는가 싶으면 골목 담장과 맞대기도 한다. 아무것도 가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어떤 가능성으로 가슴 설레게 한다.
그런데, 광주시는 너무 급하게 움직인다고 할까? 철길 흔적을 깡그리 지워버렸다. 철도를 걷어내 버렸고(유일하게 한군데 남아서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역사적 가치가 높은 남광주 역사(驛舍)까지 철거해버렸다. (이 역사는 ‘근대건축물 보존 대상’으로 문화재청에서 지목했던 건물이라 한다.)
지금 이곳은 철로 밑 쇄석 둔덕이 남아있고, 군데군데 동네 사람들이 텃밭을 가꾼다. 삼삼오오 한가롭게 노니는 아이들도 있고 건널목으로는 여전히 동네 사람들이 건너다닌다. 광주시는 서둘러 녹화사업을 펼치려고 전구간에 대해서 계획을 세워놓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잠깐 한숨 돌리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일괄 설계하고 일괄 공사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귀한 공간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이니 말이다.

▲사진설명 : 광주 폐선부지를 발표장 삼아 선보인 광주 비엔날레 ‘프로젝트 4 ’

●상상력 풍부한 프로젝트로!
마침, 2002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접속”이라는 주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이 공간을 다루고 있다. 이들의 소망은 같다. 문화적, 동네적, 생태적, 도시적 뜻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한꺼번에 하나의 안으로 공사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시민들의 참여가 다각도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자전거길, 꽃길, 파고라, 야외무대’ 같은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장치, 그저 보기만 좋게 가꾸어진 조경으로써 이 공간의 뜻이 살아나기는 어렵다.
고민해보자. 이 푸른 길에 광주시민 138만이 요모조모 끼게 할 방법은 무얼까? 연변의 각 동네 주민들이 집집마다 텃밭 하나씩 가꾸는 ‘도시 텃밭’으로 만들어 볼까? ‘도시 과수원’, ‘도시 식물원’, ‘도시 약초마당’은? 보기 좋은 조경만 하지말고 ‘상상력 풍부한 생활 속의 생태정원’을 만들어보리라.
예술은 예술가만의 것은 아니리라. 주민들이, 학생들이, 어린이들이 자기 손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무얼까? 철로 쇄석만으로 만드는 조각은? 어디에나 있는 표준형 놀이시설이 아니라 예술적인 놀이 정원을 만들려면?
●‘비취 목걸이’로 하나 되리라
이것은 결코 한가로운 프로젝트가 아니라 광주의 미래를 기약할 프로젝트다. 광주 도심은 변화 위기에 처해있다. 전남도청이 ‘남악 신도시’로 이전하고 주거 기능이 상무 신도시 쪽으로 옮겨가면 도심의 활력을 무엇으로 찾을 것인가. 이 푸른 길이 마치 ‘비취 목걸이’처럼 도심을 두를 때 그와 더불어 어떤 주거, 어떤 문화, 어떤 상업 기능을 같이 엮어 낼 것인가.
광주는 ‘뜻의 도시’, ‘공동체의 도시’다. 광주 시민은 1980년 ‘금남로’에서 온 시민이 하나 되었었다. 이 폐선 부지 가꾸기로 광주 시민은 또 다시 하나 되지 않을까? 동네를 엮어 도시를 새로 만들 광주, 너무 부럽다.
---------------------------------------------- 생태관광도시 광주로… “작게 또 내 손으로“는 21세기 트렌드 ----------------------------------------------
‘크게 또 빨리’가 20세기 도시의 열병이었다면 21세기 도시의 트렌드는 ‘작게 또 내 손으로’다. 20세기 열병의 후유증 때문에 우리가 고생하고 있다면 21세기 트렌드는 도시에 ‘매력’과 ‘프라이드’와 ‘부가가치’를 줄 것이다.
광주는 이런 트렌드를 리드할 만한, 또한 리드해야 할 도시다. 아쉽게도 광주에는 뒤늦게 ‘크게 또 빨리’ 열풍이 불고있는 듯 싶지만. 광주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이런 패러다임 자체를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브라질의 생태도시 꾸리찌바, 독일 또는 핀란드의 생태공원을 논하기 전에, ‘광주 = 생태관광도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 터인데.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싶어하는 좋은 두뇌들도 기꺼이 살고 싶어하련만. 좋은 도시, 좋은 동네란 좋은 삶, 좋은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작지만 내 손으로 내 느낌 풍부하게 살고 싶어하는 21세기 도시인, 광주가 그런 도시인들을 기쁘게 해주기를.
( 김진애·건축가·㈜서울포럼 대표 jinaikim@seoulforum.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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