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낙평 공동의장 외부칼럼] - 후쿠시마 참사의 교훈(2)

관리자
발행일 2011-04-21 조회수 99

이 원고는 2011년 4월 20일 <전남일보>에 기재된 임낙평 공동의장의 외부 칼럼입니다.


<후쿠시마참사의 교훈 - 핵에너지의 실상과 허상>


후쿠시마 원전의 냉각기능을 회복하는 데 6~9개월이 걸리고 또한 원자로 내부를 조사하기 위해 로버트가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사이 현재와 같은 방사성 물질의 방출은 불가피하고, 후쿠시마 인근의 하늘과 육지와 바다는 방사능오염에 방치될 수밖에 없고, 인근 나라인 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 핵 과학과 기술 최고 선진국이지만 '불가피하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이 '절대 안전'하다는 핵에너지와 원전의 진실이며 실상이다.

원전은 원래 전력생산의 목표보다 핵무기 개발의 부산물로서 탄생했다. 1950대 당시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가면을 씌우고 원전을 개발했다. 원전은 원자로라는 격납용기에서 핵폭발을 일으키고 거기서 얻은 고열로 물을 끓여서 수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발생시키는 장치이다. 발전원리로 보면 화력발전과 유사하지만 원천기술은 핵무기 기술이다. 1956년 영국에서 상업적 원전이 등장한 이후 60년대 당시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원전을 건설했고, 여기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핵산업계 그리고 정치인들은 환호했다. 그들은 "인류의 전력에너지 문제가 핵에너지로 해결될 것"이라고 예찬하며 "시민들은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970년대 중동사태로 인해 발생한 연이은 오일쇼크로 각국은 다수의 원전건설을 강행했다. 후쿠시마 원전도 이때 건설되었다.

그러나 1978년 미국 스리마일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1980년대 선진각국은 그들의 핵에너지 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참사가 터진 것이다. 이 참사 이후 세계적 흐름은 '탈핵'이었다. 방향선회를 한 계기는 직접적으로는 대형 사고였으나, 원전운영에서 경험한 핵폐기물 처분 등이 또 다른 이유에서였다. 원전은 핵폭발로부터의 열을 활용하지만 거기서 다량의 핵폐기물, 즉 중저준위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라는 고준위폐기물은 처리대책이 없었다. 수명이 다 된 폐원자로의 처분도 마찬가지였다. 개발초기 핵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너무 과소평가했고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해결할 것으로 낙관했었다. 그래서 원전은 '착륙장이 없는 호화 비행기' '화장실이 없는 고급맨션'으로 비유되기도 했다. 특히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반감기가 2만 4000년인 다량의 플루토늄을 함유하고 있고, 폐기한다면 1000년 동안 안전관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고준위폐기장을 건설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또한 이물질은 '평화'라는 가면을 쓰고 재처리과정을 거쳐 핵무기로 전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78년 고리1호기 가동을 시작으로 1980년대까지 정부의 핵에너지 정책에 이의제기는 없었다. 권위주의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했고, 스리마일이나 체르노빌 사고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쟁점이 될 수 없었다. '원전개발과 보유가 선진 강국으로의 길'이라는 당국의 선전이 지배적이었다. 1990년대 이후 오늘까지, 환경단체 등의 등장과 원전 혹은 핵 폐기장 후보지 주민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정부는 핵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강행해왔다. 과학기술계에서 혹은 국회에서 원전이나 핵 폐기장 등의 이슈가 활발한 쟁점이 되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지금도 비대해진 정부의 핵추진부서 그리고 핵산업계가 정보와 자료를 독점하고 핵에너지 정책을 일방적으로 가져가고 있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져야 한다.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있어야 한다. 후쿠시마 방사능 이슈를 비롯한 정부의 핵 중심의 에너지 정책, 원전과 핵 폐기장의 안전성 그리고 대안에너지 정책 등이 대해 진솔하고 활발한 토론이 민간, 학계, 국회 등에서 진행해야 된다. 우리는 지금 허상에 바탕을 둔 정책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배우고 있다.

임낙평 <광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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